Tractatus Philosophiae Discipulus: Introduction Part (2/2), 학생 철학 논고: 초문(2/2)

2nd part of the Introduction, (Korean verison underneath)

  1. To try and attain something that is unattainable is a concept lacking of motivation, and full of motivation simultaneously.
    1. Therefore, the purpose of human life is a doublethink concept.
    2. The subjective ‘truth’ may indicate a specific purpose, yet one cannot logically prove that the indicated purpose is the ‘true’ purpose.
    3. Despite that, human beings are capable of belief in what they cannot prove.
    4. Here I define faith as the belief of an existence (whether a physical entity or a conceptual cause), without the necessary logical steps required reach the certain proof of existence.
    5. Therefore, ‘faith’ is a type of subjective truth. (Although it may not be a ‘start’, as there are no possible or motivated route towards the logical derivation of it, we can consider it as a ‘start’, hence fitting the definition of a subjective truth.)

 

  1. Human actions are either motivated from ‘subjective truth’ or ‘faith’
    1. The pursuit of the understanding of human purpose must therefore be based on ‘subjective truth’ or ‘faith’
    2. That ‘subjective truth’ is most likely to be that ‘One can find their own purpose in life’
    3. However, as we have concluded that under the assumption of ‘subjective truth’(‘faith’), two opposing concepts of certainty and uncertainty are simultaneously existing.
    4. Like such, human actions are impossible to justify through objective logic as all actions can be considered to contradict itself.
    5. Therefore, my action of writing this piece of writing is a futile endeavour towards ambivalence.

 

  1. The purpose of this writing must be justified by the existence of this writing.
    1. As this writing exists despite the understanding of its impossibility of justification, it is a paradox.
    2. The pursuit of objective truth through the use of ‘language’ in order to convey existence between beings that are existent is therefore (under my ‘subjective truth’) an impossibility.
    3. Yet the reason I am still writing is (on a side note: showing how you become deranged in trying to survive as a university student) to demonstrate value from the impossible.
    4. ‘Value’ is defined as an exterior justification of existence, not the intrinsic justification through purpose.
    5. Therefore ‘value’ is quantified through what other existent beings identify on the existence of the entity that is being ‘valued’.

 

  1. It is of my ‘faith’ that this writing will be of ‘value’ to some readers, despite is fundamental logical fallacy.
    1. ‘Creation’ is the super-imposing of ‘value’ and ‘faith’.
    2. It is of my ‘subjective truth’ that the ‘creation’ of this writing is able to enhance the quality of life of other existent beings and of mine.
    3. Which can only follow, as the ‘action’ of writing must be motivated by my ‘subjective truth’/’faith’, and hence it defines a purpose that I perceive, which I also know I cannot prove is a true purpose or not. (but it doesn’t matter is what I’m trying to basically say)

 

From the next post on the Tractatus Philosophiae Discipulus(TPD) I will be using the fundamentals and justificaiton set up in the introduction to look into aspects of University life such as Depression, Religion, Studies, Purpose etc.

Jeehoon Kang (TP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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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노력은 동기 부족의 개념이면서, 동시에 동기의 포화상태이다.
    1. 그러므로, 삶의 ‘목적’은 이중사고 개념이다.
    2. 주관적 ‘진리’는 어떠한 특정한 ‘목적’을 가르킬 수 있지만, 그 가르켜진 ‘목적’이 ‘참’ 목적인지는 논리적으로 증명해 낼 수 없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증명의 불가라는 조건을 무시한 상태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4. ‘믿음’이란 정의하자면, 어떠한 ‘존재’(물리적 존재이든, 추상적 사고/신조이든)의 증명에 다가가는 논리적 단계를 불문한 그 ‘존재’에 관한 신뢰이다.
    5. 그러므로, ‘믿음’이란 주관적 ‘진리’의 종류 중 하나이다. (‘주관적 진리’란 어떠한 ‘시작’이지만, ‘믿음’이라는 것이 ‘시작’이 아닐 수 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믿음’에 있어서 그 하위 단계로 가능한 논리적 유도 또는 그러한 동기가 없으니 ‘시작’으로 취급을 해도 된다.)

 

  1. 인간 ‘행위’란 주관적 ‘진리’ 또는 ‘믿음’ 에서 밖에 비롯된다.
    1. 인간의 ‘목적’을 정의하려는 행위는 그러므로, 주관적 ‘진리’ 또는 ‘믿음’에서 비롯 됬을 것이다.
    2. 그 주관적 ‘진리’는 아마 ‘어떠한 개인은 자신의 ‘목적’을 직접 정의 할 수 있다’ 일 것이다.
    3. 하지만 ‘주관적 진리’라는 전제하에 정의된 결론임으로, 그 개인이 자신의 ‘주관적 진리’의 한도를 인지하면, 확실성과 불확실성이 동시에 ‘존재’ 한다. (목적을 직접 정의 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라는 확실성과, ‘믿음’이란 증명 불가의 논리적 성질을 가졌기에 인간의 목적은 얻을 수 없음에도 자신의 목적을 찾으려는 불확실성이 말이다.)
    4. 이와 비슷하게, 인간 ‘행위’는 객관적 논리를 사용해서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 모든 ‘행위’는 스스로를 모순되게 하기 때문이다.
    5. 그러므로, 내가 이 글을 쓰는 ‘행위’ 또한 양면 가치의 모순에 다가가는 어리석은 노력일 뿐이다.

 

  1. 이 글의 ‘목적’은 이 글의 ‘존재’에 의하여 정당화 되어야 한다.
    1. 정당성의 불가능에 불구한 이 글의 ‘존재’는 역설이다.
    2. ‘언어’를 사용하여 ‘존재됨’ 사이에서 ‘존재’라는 것을 전달하면서 객관적 ‘진리’를 찾겠다는 노력 또한 불가능이다.
    3. 하지만 이 글을 계속 쓰는 이유는 (대학에 오면 얼마나 정신이 이상해 지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불가능에서의 ‘가치’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4. ‘가치’란 ‘존재’에 관한 ‘목적’을 통한 내적 정당성이 아닌 외적 정당성이다.
    5. 그러므로, ‘가치’는 다른 ‘존재’들이 얼마나 ‘가치 매김’을 당하는 ‘존재’를 통한 개인적 인식을 통해 계량 된다.

 

  1. 나는 이 글이, 본질적 논리적 오류에 불구하고, 몇 몇 독자들에게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1. ‘창조’란 ‘가치’ 와 ‘믿음’의 중첩됨이다.
    2. 나의 주관적 ‘진리’ 중 하나는 이 글의 ‘창조’가 다른 ‘존재’들과 나의 ‘존재’의 삶의 질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3. 위는 당연히 따를 수 밖에 없는데, 바로 내 ‘행위’는 나의 ‘주관적 진리’에 의해 동기를 얻을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주관적 ‘목적’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 주관적 목적이 ‘참’ 목적인지 모를 뿐이다. (하지만 그게 상관 없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내가 전하려고 하는 개념이다.)

학생 철학 논고에 올라오는 다음 글 부터는 초문에 나열된 바탕과 정당성을 통해 대학생활의 여러가지 분야(우울증, 종교, 목적, 공부 등등)을 다룰 예정이다.

강지훈(ㅎㅊㄴ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