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nd part of the Introduction, (Korean verison underneath)
- To try and attain something that is unattainable is a concept lacking of motivation, and full of motivation simultaneously.
- Therefore, the purpose of human life is a doublethink concept.
- The subjective ‘truth’ may indicate a specific purpose, yet one cannot logically prove that the indicated purpose is the ‘true’ purpose.
- Despite that, human beings are capable of belief in what they cannot prove.
- Here I define faith as the belief of an existence (whether a physical entity or a conceptual cause), without the necessary logical steps required reach the certain proof of existence.
- Therefore, ‘faith’ is a type of subjective truth. (Although it may not be a ‘start’, as there are no possible or motivated route towards the logical derivation of it, we can consider it as a ‘start’, hence fitting the definition of a subjective truth.)
- Human actions are either motivated from ‘subjective truth’ or ‘faith’
- The pursuit of the understanding of human purpose must therefore be based on ‘subjective truth’ or ‘faith’
- That ‘subjective truth’ is most likely to be that ‘One can find their own purpose in life’
- However, as we have concluded that under the assumption of ‘subjective truth’(‘faith’), two opposing concepts of certainty and uncertainty are simultaneously existing.
- Like such, human actions are impossible to justify through objective logic as all actions can be considered to contradict itself.
- Therefore, my action of writing this piece of writing is a futile endeavour towards ambivalence.
- The purpose of this writing must be justified by the existence of this writing.
- As this writing exists despite the understanding of its impossibility of justification, it is a paradox.
- The pursuit of objective truth through the use of ‘language’ in order to convey existence between beings that are existent is therefore (under my ‘subjective truth’) an impossibility.
- Yet the reason I am still writing is (on a side note: showing how you become deranged in trying to survive as a university student) to demonstrate value from the impossible.
- ‘Value’ is defined as an exterior justification of existence, not the intrinsic justification through purpose.
- Therefore ‘value’ is quantified through what other existent beings identify on the existence of the entity that is being ‘valued’.
- It is of my ‘faith’ that this writing will be of ‘value’ to some readers, despite is fundamental logical fallacy.
- ‘Creation’ is the super-imposing of ‘value’ and ‘faith’.
- It is of my ‘subjective truth’ that the ‘creation’ of this writing is able to enhance the quality of life of other existent beings and of mine.
- Which can only follow, as the ‘action’ of writing must be motivated by my ‘subjective truth’/’faith’, and hence it defines a purpose that I perceive, which I also know I cannot prove is a true purpose or not. (but it doesn’t matter is what I’m trying to basically say)
From the next post on the Tractatus Philosophiae Discipulus(TPD) I will be using the fundamentals and justificaiton set up in the introduction to look into aspects of University life such as Depression, Religion, Studies, Purpose etc.
Jeehoon Kang (TP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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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노력은 동기 부족의 개념이면서, 동시에 동기의 포화상태이다.
- 그러므로, 삶의 ‘목적’은 이중사고 개념이다.
- 주관적 ‘진리’는 어떠한 특정한 ‘목적’을 가르킬 수 있지만, 그 가르켜진 ‘목적’이 ‘참’ 목적인지는 논리적으로 증명해 낼 수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증명의 불가라는 조건을 무시한 상태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 ‘믿음’이란 정의하자면, 어떠한 ‘존재’(물리적 존재이든, 추상적 사고/신조이든)의 증명에 다가가는 논리적 단계를 불문한 그 ‘존재’에 관한 신뢰이다.
- 그러므로, ‘믿음’이란 주관적 ‘진리’의 종류 중 하나이다. (‘주관적 진리’란 어떠한 ‘시작’이지만, ‘믿음’이라는 것이 ‘시작’이 아닐 수 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믿음’에 있어서 그 하위 단계로 가능한 논리적 유도 또는 그러한 동기가 없으니 ‘시작’으로 취급을 해도 된다.)
- 인간 ‘행위’란 주관적 ‘진리’ 또는 ‘믿음’ 에서 밖에 비롯된다.
- 인간의 ‘목적’을 정의하려는 행위는 그러므로, 주관적 ‘진리’ 또는 ‘믿음’에서 비롯 됬을 것이다.
- 그 주관적 ‘진리’는 아마 ‘어떠한 개인은 자신의 ‘목적’을 직접 정의 할 수 있다’ 일 것이다.
- 하지만 ‘주관적 진리’라는 전제하에 정의된 결론임으로, 그 개인이 자신의 ‘주관적 진리’의 한도를 인지하면, 확실성과 불확실성이 동시에 ‘존재’ 한다. (목적을 직접 정의 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라는 확실성과, ‘믿음’이란 증명 불가의 논리적 성질을 가졌기에 인간의 목적은 얻을 수 없음에도 자신의 목적을 찾으려는 불확실성이 말이다.)
- 이와 비슷하게, 인간 ‘행위’는 객관적 논리를 사용해서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 모든 ‘행위’는 스스로를 모순되게 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내가 이 글을 쓰는 ‘행위’ 또한 양면 가치의 모순에 다가가는 어리석은 노력일 뿐이다.
- 이 글의 ‘목적’은 이 글의 ‘존재’에 의하여 정당화 되어야 한다.
- 정당성의 불가능에 불구한 이 글의 ‘존재’는 역설이다.
- ‘언어’를 사용하여 ‘존재됨’ 사이에서 ‘존재’라는 것을 전달하면서 객관적 ‘진리’를 찾겠다는 노력 또한 불가능이다.
- 하지만 이 글을 계속 쓰는 이유는 (대학에 오면 얼마나 정신이 이상해 지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불가능에서의 ‘가치’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 ‘가치’란 ‘존재’에 관한 ‘목적’을 통한 내적 정당성이 아닌 외적 정당성이다.
- 그러므로, ‘가치’는 다른 ‘존재’들이 얼마나 ‘가치 매김’을 당하는 ‘존재’를 통한 개인적 인식을 통해 계량 된다.
- 나는 이 글이, 본질적 논리적 오류에 불구하고, 몇 몇 독자들에게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 ‘창조’란 ‘가치’ 와 ‘믿음’의 중첩됨이다.
- 나의 주관적 ‘진리’ 중 하나는 이 글의 ‘창조’가 다른 ‘존재’들과 나의 ‘존재’의 삶의 질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 위는 당연히 따를 수 밖에 없는데, 바로 내 ‘행위’는 나의 ‘주관적 진리’에 의해 동기를 얻을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주관적 ‘목적’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 주관적 목적이 ‘참’ 목적인지 모를 뿐이다. (하지만 그게 상관 없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내가 전하려고 하는 개념이다.)
학생 철학 논고에 올라오는 다음 글 부터는 초문에 나열된 바탕과 정당성을 통해 대학생활의 여러가지 분야(우울증, 종교, 목적, 공부 등등)을 다룰 예정이다.
강지훈(ㅎㅊㄴ2)